월간 씨:온 (施:溫)  


기독교문화콘텐츠를 만나는 또 하나의 방법.

매월 발간되는 월간 '씨:온'은 기독교문화의 온기를

세상 가운데 전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월간 씨:온은 매월 한 가지의 주제로 기독교문화콘텐츠를 나눕니다. 


[ Vol 02 ] 기독교문화의 오래된 미래, CCM




1981년 12월 14일, 극독방송 주체로 개최된 제1회 전국복음 성가경연대회에서 무려 '금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던 주찬양선교단. 이후 주찬양선교단은 발매하는 앨범(당시는 카세트테이프가 주를 이뤘다)마다 한국교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특히 송명희 시인과 함께 만들었던 앨범 '그 이름'은 말 그대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앨범의 모든 넘버가 교회에서 오랫동안 함께 찬양되었다. 이를 통해 찬송가와 장엄한 성가곡이 대부분이던 당시 교회음악에 '복음성가'라는 새로운 장르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출처 : 페이스북 페이지 "주찬양의 추억(Memories of Juchanyang)" 



1988년 4월, 광화문 사거리에 "주찬양의 집"이라는 음반 판매점이 오픈을 했다. 당시 새문안교회의 학생이었던 필자는 그 역사적인 순간을 직접 목격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라디오 생방송도 진행했던 '주찬양의 집'의 노란색 간판은 구세군회관의 '생명의 말씀사'와 더불어 광화문의 중요한 기독교적인 상징처럼 보이기도 했다. 

비록 당시 기독교 찬양 앨범은 주로 '최 미', '김석균'등의 은혜 찬양이 위주였고, 미국 CCM의 전설 '샌디 패티'나 새롭게 떠오르던 '에미 그랜트'의 앨범이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하던 때라 그 내용 자체는 풍성하지 않았지만, '복음성가'라는 한 장르로만 이뤄진 음반 판매점이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CCM 열풍의 서막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 




이제 막 개척(?)한 온누리교회의 예배 찬양팀 '경배와 찬양'이 낸 실황 앨범 "전하세 예수"가 말 그대로 한국교회에 '경배와 찬양'이라는 열풍을 일으켰던 것이다. 앨범에 수록된 "예수 사랑해요", "목마른 사슴", "온 땅과 만민들아" 등 외국 찬양의 번안곡들이 대거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목요 찬양집회'라는 거대한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매주 목요일이면 용산과 서울역 인근에선 서빙고동에 위치한 온누리교회 행 38번 버스를 타기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신서사이저, 드럼, 일렉&어쿠스틱 기타, 베이스 등 동시대적인 악기로 구성된 워십 밴드의 음악은 한국 교회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온누리교회의 '열린 예배'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고, 특히 청년들을 위주로한 예배 순서들이 전통적인 예배에서 '열린 예배'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앞다투어 악기와 음향 시스템을 구축하고 예배팀을 조직하는 교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온누리교회 예배팀에서 사용하는 악기들이 일종의 '표준'이 되었고, 교회에는 오직 '음악'을 목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청년들도 조금씩 늘어나기도 했다. '과연 이러한 문화가 괜찮은 것인가? 이것이 예배의 형태로 신학적인 문제가 없는가?' 라는 의문보다 현상이 늘 앞서 있었다. 더불어 이 '현상'은 '전도와 선교'라는 교회적 필요와도 호응했다. 

호산나넷과 갓피플. 낮은울타리의 성장과 함께 1990년대 초 신촌은 CCM의 중심이 되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당시  신촌은 닷넷의 열풍과 기독교문화라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을 이끌어갔던 상징적인 장소가 되었다. 신촌 창천교회에서는 매주 '문화쉼터'라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고, 젊은이들을 위한 예배, 청년들을 위한 열린 예배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게 되었다. 역시 신촌 근처에 자리를 잡았던 '예수촌교회(손종태 목사)'는 '열린 예배'를 적극 수용하며 찬양사역자 강명식 음악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교회 성장의 모델이 되었다. 낮은울타리의 문화 사역도 당시 발행하던 잡지뿐 아니라, 웨딩, 미용, 실용음악학원, 어린이 뮤지컬 팀 등으로 빠르게 확대되었고 그 영향은 청장년들에게 기독교문화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었다.  

CCM 앨범 시장도 풍성했다. 인피니스, 휫셔뮤직, 주찬양, 기쁨의 집, 다솔기획, 칼라 등의 레이블에서 다양한 CCM 앨범들이 출시되었고 호산나, 힐송 등의 찬양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돈 모엔(Don Moen)이나  밥 피츠(Bob Fitts)와 같은 찬양 사역자들이 한국을 찾아 대규모의 찬양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CCM의 눈에 띄는 신인은 단연 '소향'이었다. 소향은 1집 앨범으로 김수지, 조수아와 함께 CCM 여성 보컬리스트로 단숨에 자리잡았다. 소향의 1집 넘버 '반석 위에' 찬양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과 고막을 동시에 울렸고, 애창곡이자 동시에 절대 원키(原-key)로 부를 수 없는 일반인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소향의 1집 '소향 Contemporary Christian Music'(2000)


송정미, 박종호, 김수지, 창문, 김도현, 컨티넨탈 싱어즈, 조수아, 믿음의 유산, 김명식, 꿈이 있는 자유, 강명식, 옹기장이, 어노인팅 등 2000년대 초반부터 쏟아지는 CCM 앨범들이 하나의 장르로 성장하기 시작했고, 이런 성장세라면 미국처럼 대중음악에서도 별도의 가스펠 차트가 생겨나고 '도브 어워드'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생겼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어느 순간 CCM은 자취를 감췄다. 혹자는 그 이유를 '경배와 찬양'으로 편중되기 시작한 교회음악의 환경에서 이유를 찾는다. 즉 CCM이 사라진 뒤, '마커스'나 '다리놓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왔고, 이후 '제이어스'나 '위러브'가 현재의 CCM 음악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2010년 이후로는 예배 음악이 개인이나 밴드의 CCM보다 더 큰 비중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 많은 CCM 사역자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사실 CCM의 갑작스런 소멸은 충분히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우선 그 구조적인 '열악함'에서 조짐을 찾을 수 있었다. 'CCM 사역자'라는 이름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었을까? 교회에서 특송형식으로 찬양을 하고 현장에서 직접 앨범을 판매하던 사역자들이 대부분이던 시절. 기획사는 존재했지만 그 기능은 무색하리만큼 없었다. CCM 사역자를 한 사람의 '아티스트'로 존중하는 분위기보다는 '사역자'라고 보는 시선이 대부분이었고 그 이유로 '사역자의 청빈(靑蘋)'이 종종 강요되었다. 대중의 무대가 없는 CCM 사역자들에겐 교회 현장 외에는 어떤 수익의 모델이 없었던 상황에서 교회의 수요가 감소하자 결국 구조적인 소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기획사들은 콘서트 등의 무대를 만들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CCM 사역자를 '아티스트'로 재정의하려 했으나 이미 너무 늦은 결정이었다. CCM의 소비자인 성도들로서는 교회에서 '공짜'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굳이 비용을 지불하여 들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CCM이란 이름이 무색하리만치 '교회 밖'에선 전혀 사용되지 않는 '동시대적'인 음악의 한계성은 결국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꿈이 있는 자유의 '소원'이 비단 기독교인뿐 아니라 많은 대중들에게서도 공감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누구나에게 있기 때문이며, '내 가는 길만 비추기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야 말로 '동시대적인 기독교 음악'의 잠재력이 아닐까? 아니 오직 CCM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여전히 CCM은 필요하다. 

마치 '오래된 미래'처럼 '동시대적인 기독교 음악'의 자리는 늘 빈 자리로 놓여 있다.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하고 A면과 B면을 돌려서 들어야 했던 시절(곧 오토리버스라는 신기한 기능이 등장했지만), 한 사람의 내밀한 고백처럼 들렸던 그 신중한 기도와 목소리가 여전히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필자는 CCM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종종 하덕규의 '쉼' 앨범을 이야기하곤 한다. 1990년, '시인과 촌장'이 아닌 노래하는 시인 '하덕규'로 돌아온 그는, 숭의음악당을 가득 채운 오랜 팬들 앞에서 자신의 내밀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
그 먼 옛날 아련했던 그 어디쯤에선가
길을 잃었던 우리

이제는 돌아가야할 때 그 끝이 없을 것 같던
어둠도 가고 찬란한 새벽 새로운 하늘 열리는 지금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
끝없이 부르는 그리운 목소리 잃었던 동산을 찾아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
영원한 노래와 영원한 평화와 영원한 쉼이 있는 곳으로

- 하덕규  '돌아가야 할 때' 전문


오랜 시간, 거듭된 기도와 고민, 묵상의 끝에서 건져 올린 듯한 그 음절 음절이, 그 진심이 '시인과 촌장'을 기대하고 공연장을 찾았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닿았다. 그곳에서 일어났던 신비로운 화학적 변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CCM의 자리가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깊은 묵상과 고민이 건져 올리는 기도의 노래가, 그 진심이, 동시대적인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도록...



하덕규 - '돌아가야 할 때' 듣기




         

Editor 구창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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